성경에는 많은 선지자 혹은 선견자로 불리워지는 사명자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소리를 내어 그 시대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독특하게도 그들은 ‘자신이 깨달았다’거나 ‘이렇게 하면 어떻겠는가’라는 권유의 표현을 쓰지 않는다. 다만,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와서 이렇게 하라 하셨으니 너희들은 들으라”는 다소 공격적이고 직접적인 표현으로 대중 앞에 나선다.
이러한 메시지를 믿고 받아들인다면 별 무리 없지만, 나름대로 사회적 지위와 전문 분야에서 활동하는 자긍심이 강한 사람들은 ‘자기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 하는가’생각하며 마음의 문을 열기 어려운 것 같다.
그러나 사람은 살면서 많은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렇다면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 몰라서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 일단 귀를 기울여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최근에 ‘인류를 바꾼 5가지 기계’라는 제목의 TV프로그램에서 ‘센서’를 그 한 예로 들었다. 사전적인 의미로 센서(Sensor)는 어떤 외부 자극에 대해 반응을 감지할 수 있는 장치나 시스템을 이른다. 한 대당 한화로 2조원을 호가하는 조기경보기(早期警報機, early warning aircraft)가 북한의 도발 징후를 감시할 수 있는 것도 컴퓨터와 센서의 기술 발달이 있어서 가능한 일들이다.
선지자들은 일종의 조기 경보기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아모스 3장 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실 때 당신의 비밀을 그 선지자들에게 반드시 보이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거기에 대하여 선지자들은 “내가 무엇인가 본 것이 있기 때문에 외치는 것”이라고 화답하고 있다. 한마디로 영적인 조기 경보기가 울릴 때엔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구체적인 섭리를 펴신다는 뜻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유추해 보면 인류 구원의 역사도 그러하지만 인류의 대소사도 그렇고 개인의 대소사에도 하나님은 징조라고 할 수 있는 일들로 긴장시키시며 미리 준비케 하신다. 깨어있어 준비한 자들은 위기를 극복하여 오히려 복으로 (전화위복:轉禍爲福) 만들기도 했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천년만년 갈 것 같은 영화가 무너져서 역사의 뒤안길로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
2007년 말 일어난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도 쇠줄이 끊어진 예인선이나 유조선, 항관실 그리고 해수부에서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그렇게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또, 조금만 더 빨리 사고 수습을 했었떠라면 110만명 이상의 자원봉사자들이 시커멓게 물들은 바닷가에서 퍼도 퍼도 나오는 원유로 인하여 가슴이 타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어떤 일을 당했을 때 그것을 해결해 준 것이 고마운 것인지, 아니면 일을 당하기 전에 미리 준비케 해서 사고를 면하게 해준 것이 더 고마운 일인지…
되짚어 생각해보면 자명한 일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희한하게도 어떤 일이 다쳐서 힘들어질 때 도와준 것을 굉장히 크게 여기고 고맙게 여긴다. 그러나 만약 사건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사고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드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낭비를 막아준다면 또, 아무 해됨 없이 제 갈 길을 제대로 가게 해주는 사람(것)이 있다면 인생에 얼마나 크고 큰 도움이 되겠는가.
그러나 기름 유출 사고의 과정이 그러하듯이 “작고 인구가 많지 아니한 어떤 성읍에 큰 왕이 와서 그것을 에워싸고 큰 흉벽을 쌓고 치고자 할 때에 그 성읍 가운데에 가난한 지혜자가 있어서 그의 지혜로 그 성읍을 건진 그것이라 그러나 그 가난한 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전도서 기자는 9장에서 깨우쳐 주고 있다.
신앙적으로 볼 때, 죄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죄를 짓고 고통 받고 회개하는 것은 너무 힘들다. 참고 죄를 안 짓는 것이 훨씬 쉽다. 참고 죄를 짓지 않음으로 지옥(현세와 내세)과 상관없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귀에 거스린다고 무조건 거부할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작은 자 – 자기가 크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함부로 하지 않을것이다 – 를 통하여 구원에 합당한 역사를 하시는 하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지혜가 더욱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