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MS/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자기 삶의 형상, 자기 영의 형상을 ‘전능하신 삼위일체가 원하시는 형상과 모양’으로 만들어라.

잠언

<자기 삶의 형상, 자기 영의 형상>을 

‘전능하신 삼위일체가 원하시는 형상과 모양’으로 만들어라.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자기를 만드는 대로 만들어진다. 

[ JMS/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

 

내용 더 보기

jms 정명석 총재 설교 – 여러 가지 형상을 갖춰야 아름답고 신비하다 차원을 높이는 방법 / 마태복음 11장 29-30절

jms 정명석 총재 2016년 1월 10일 주일 설교 :
여러 가지 형상을 갖춰야 아름답고 신비하다. 차원을 높이는 방법 / 마태복음 11장 29-30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성령님은 ‘여러 가지 모양과 형상’으로 나타나며 ‘여러 가지 아름다운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성령님의 역사도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합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여러 가지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 역사하심이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합니다.

말씀을 배우는 모습, 말씀대로 행하며 노력하는 모습, 참고 견디며 이기는 모습이 그리도 아름답습니다. 환난·핍박·어려움이 몰려와도 끝까지 주를 따르며 주와 함께 행하는 모습이 그리도 아름답습니다. 새벽을 깨워 삼위와 주와 소통하고 대화하고자 몸부림치며 행하는 모습이 그리도 아름답습니다. 생명을 살리고자 희생하는 모습이 그리도 아름답습니다. 인격을 갖추고 좋은 말과 행실로 생명을 대하는 모습이 참 감동적이고 아름답습니다. 삼위를 사랑하며 살고자 행하는 그 모습이 참 감동적이고 아름답습니다. 믿지 않고 인정하지 않았던 자가 시대를 깨닫고 뒤집어져 행하는 그 모습이 참 감동적이고 아름답고 신비합니다. 안 하겠다고 하던 자가 성령의 감동과 이끌림을 받아 다시 주의 뜻대로 행하는 그 모습이 참 감동적이고 아름답고 신비합니다. 이 모든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단순한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육과 생각과 혼과 영을 살리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신비하다는 것입니다. 아름답고 신비한 미의 여신이 그 모습답게 ‘여러 가지 형상’으로 ‘여러 가지 아름다운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역시 ‘성령님’이십니다.

여러 가지 형상을 갖추고 있으면 아름답고, 여러 가지 역사가 일어나면 그리도 아름답고 신비합니다. 이처럼 여러 가지를 두루두루 갖출수록 그리도 아름답고 신비합니다. 그 육도 삶도 아름답고 신비하고, 그로 인해 변화된 영도 아름답고 신비합니다.

모두 현재 위치에서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한 가지씩 행하면서, 두루두루 갖추며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삼위일체와 주의 형상을 많이 닮도록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차원을 높이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방법은 곧 ‘평소’대로 안 하고, 더 ‘힘’을 내고 ‘열심’을 내서 하는 것입니다. 무거운 물건을 들 때도 ‘보통’으로 드는 것과 그보다 ‘힘’을 내서 드는 것은 그 차원이 비교가 안 됩니다. 이와 같이 더 ‘열심’을 내서 하면, 차원이 높아집니다.

만사의 어떤 일이든 차원을 높이려면, 더 ‘힘’을 내고 ‘열심’을 내면 됩니다. 사람은 힘을 낼수록 힘이 나고, 열심을 낼수록 열심히 하게 됩니다. 문제는 ‘하고자 하느냐, 하기 싫어하느냐’입니다.

차원을 높이는 것은 마치 ‘급경사로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올라갈 때는 경사가 심해서 힘이 들지만, 올라가서 보면 ‘평지’입니다. 고로 올라갈 때, 차원을 높일 때만 더 ‘힘’을 내면 됩니다. 올라가서 그 차원으로 가면 ‘평지’와 같아서 그때부터는 그렇게 ‘힘’을 안 내도 됩니다. 고로 높이 오를 때, 차원을 높일 때 그때 최선을 다하기입니다. 여러분 각자 부족한 것, 차원 높일 것, 자기가 행할 것들이 있습니다. 힘을 내고 열심을 내야 됩니다.

사람이 산을 오를 때도 그렇게 ‘힘’이 듭니다. 급경사, 오르막길이 나올수록 더 ‘힘’을 내서 올라야 됩니다. 그때는 ‘평지’를 걷듯이 산을 타면, 오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산 정상에 오르면, 더 이상 ‘급경사’도 없고 ‘오르막길’도 없습니다. 그때부터는 산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자기 수고를 칭찬하며 보람과 기쁨을 누리는 일만 남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맛에 산을 탑니다.

기도, 전도, 감사 생활, 삼위와의 소통, 주와 일체의 삶, 생각, 행실, 말투, 성격, 인격 등 신앙의 차원을 높이는 것도 그러합니다. 2단, 3단, 4단으로 차원을 높일수록 더 ‘힘’을 내야 됩니다. 그런데 차원을 높일 때 그때가 그리도 힘이 듭니다. 그러나 막상 차원을 높여서 ‘그다음 차원’으로 가면, 그때부터는 그렇게 힘이 들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쭉~ 열심히 하다가 항상 ‘마지막 선’에서 낙심하고 포기합니다. 그 차원의 마지막은 ‘제일 급경사’이고 ‘오르막길’입니다. 그때 낙심하지 말고 더 힘을 내서 오르면 올라가집니다. 그런데 그때! 힘들다며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니 ‘수고한 것’이 헛되고, ‘수고의 대가’를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도, 전도할 때도, 기타 신앙의 어떤 일을 할 때 쭉~ 참고 이기며 열심히 하다가 끝에 가서 ‘마지막 오르막길’을 오르지 못하고 포기하거나 낙심하면 안 됩니다. 그때는 더욱 힘을 내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도 부르고, 지도자도 부르고, 도와줄 자도 부르고, 자기도 더 힘을 내면서 끝까지 올라야 됩니다. 끝까지 올라야 됩니다! 그 고비를 넘겨야 됩니다! 그 한계를 넘어서야 됩니다! 그러면 ‘다음 차원’으로 갑니다. 맨 끝이 제일 힘들지만 그 ‘오르막길’을 넘어서면, 그때부터는 ‘평지’처럼 편안하고 수고의 대가도 받고 누리게 됩니다.

“올라갈 때만 힘이 들지, 힘들여 올라가고 나면 거기서부터는 ‘평지’와 같아서 안 힘들다.” 이 말을 꼭 명심하고, 잊지 말고 늘 뇌 속에 품고 다니며 행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말씀이 하나님이 되고, 성령님이 되고, 성자 주가 되고 ​돕는 자가 되어 함께 행해 줄 것입니다. ​

 

<2016년 1월 10일 정명석 목사의 주일말씀 中>

내용 더 보기